본문으로 바로가기

자기계발 9회차_많은 대화를 나눈 날

category 블로그일기 2020. 2. 29. 22:30

자기계발 9회차_많은 대화를 나눈 날





오늘 가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거의 1년치 대화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야기의 중점은 그것이었다.


나를 '부정적이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나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나 스스로는 좀 힘들고 괴로워서 조언을 구했다.




많고 많고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나온 결말은


끊어내야한다. 거리를 둔다. 라는 것이었다.




최고 : 모든 사람을 수용하고 받아준다. 품어준다.

최선 : 받을 수 있는 사람만 받고, 내가 힘든 사람은 끊는다.

차악 : 감정적으로 내가 너무 힘들지만 받으려고 노력한다.

최악 : 다 끊어버린다.



이 4가지 중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최고의 성향을 포기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최고의 상황을 선택하기에 나의 역량도,

나의 상태도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오빠도, 엄마도, 아빠도 내게 조언하였다.



그렇게 이런 대화를 나눈 과정 속에서도

참 많이 속상했나보다. 



속상한 이유는 2가지 였다.





첫번째, 내가 그런 '최고'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정말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에서 오는 자괴감. 


그런 사람이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이기엔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역량을 가지고 있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도 그리 하지 않은, 

그냥 조금 들어주는 척 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참 속상했나보다.


그래도 얘기하는 과정 중에서, 대화하는 과정 중에서

나 역시도 사람이었고, 그러기에 그런 예수님 같은

최고의 성향을 가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나도 사람이었다.







속상한 이유 두번째,

그런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최선' 을 선택하기로 한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연락을 점차 끊고,

거리를 두고, 나중에 정말 인간관계 마저도 끊을 각오를 하고

나 자신을 위해서 멀리하는 것인데.




그게 너무나도 속상한 것이다.

내가 그런 역량이 되지 않아 거리를 둬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다고 곁에 두기엔 내 자존감이, 야금야금 갉아먹히고

내가 힘들고 지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놓기 싫은, 그런 느낌이다.



욕심.


이 단어 한가지로 표현이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도 못하는데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거지.




그래도 지금의 최선은 그 방법밖에 없다.

나 자신을 갉아먹히는 것보다, 거리를 두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좋은 것이다.



그래, 그게 맞는거야. 참 인정하기 힘들고 힘들다.



도중 엄마가 말하는 건 나는 '완벽주의자' 성향이라는 건데

블로그에서도 그렇지만 이러한 인간관계 면모에서도

'완벽주의자' 성향이 영향을 끼칠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정말 맞다.

모두를 포용하면서도 나 자신의 자존감도 굳건히 지키는

그런 '완벽한 사람'을 꿈꿔왔고 바래왔으니까.



그래서 포기하기 더 아쉽고 슬픈 것 같다.


물론 아에 포기한 건 아니고,

지금 내 상황에 맞게 전략을 바꾼 것이다.



언젠간 '최고'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나 자신도 굳건한'

그런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꼭.








자기계발 9회차_많은 대화를 나눈 날